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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을 잃어 버렸지만 새로운 세상 얻었습니다"

이달 초 안구암 수술 받고도…벌써 현업 복귀 후배에 귀감 적잖은 두려움 있었지만…다른 한 눈 있어감사 할 뿐 40년 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한인들에게 형사소송 관련 무료법률 상담을 하는 등 '한인사회의 맏형'으로 불려온 민병수 변호사(78)가 최근 안구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지난 3월 말 안구암 진단을 받은 민 변호사는 이달 초 왼쪽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부위가 아무는 7월부터는 8주 과정의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되지만 그는 벌써 법원과 사무실을 출퇴근하는 변호사 생활로 복귀하며 흔들림 없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4일 병원에서 퇴원한 사흘 후에 오렌지카운티 지역 법원에 계류 중인 케이스를 진행하기 위해 법원에 출두했다. 또 지난 21일에는 법정에서 판사가 눈에 붙인 반창고의 용도를 묻자 '애꾸눈이 됐다'고 웃으며 농담할 만큼 현재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민 변호사에게 암 증세가 발견된 건 지난 해 말. 왼쪽 눈 아래가 불그스레 변하며 볼록해져 내과를 찾아갔던 그는 처음엔 그저 '종양같다'는 진단에 처방받은 항생제를 꾸준히 복용했다.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증세가 사라지지 않자 안과를 찾았고 조직검사를 통해 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처음엔 한쪽 눈을 잃는다는 것에 적잖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며 "비록 눈 하나는 잃었지만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얻은 것 같다"고 담담해 했다. 그는 특히 "수술 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책을 읽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법원에서 변호사 일을 할 수 있어 지금의 내 삶이 기쁘다"고 말했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받아 긴장하고 있습니다. 남은 한쪽의 눈과 함께 남은 여생 즐겁게 또 열심히 살겠습니다." ☞민병수 변호사는 초대 교통부 장관이며 LA 1대 총영사였던 민희식(1895-1980) 선생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3 때인 1948년 미국에 도착한 그는 라번 대학을 졸업해 교사로 일하면서 글렌데일 법학대학원에서 법률 공부를 한 뒤 1975년 변호사가 됐다. 한미변호사협회(KABA)를 창설하고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 민주당 대통령 자문위원을 지냈다. LA미주한인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2003년 LA시와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와 연방 정부가 1월 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제정, 선포하는 데 앞장섰다. 또 2006년 '찰스 H. 김 초등학교', 2009년 '김영옥 중학교'명명 운동을 주도했다. 장연화 기자 yhchang@koreadaily.com

2011-06-22

[안구암 수술 민병수 변호사] "변호사직 은퇴? 계획없어요 저소득층 위해 일할 겁니다"

민병수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22일은 안구 적출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꼭 일주일 뒤였다. 윌셔가의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민 변호사는 한 손에 낡고 무거운 서류가방을, 다른 한 손엔 두툼한 배심원 관련 법률 책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케이스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주부터 운전도 시작했다"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밝아,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거즈가 없었다면 수술한 환자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 안구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요. "보통 그럴 때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화가 난다는데 전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면 안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17살 때 고등학교 졸업반에 진학했다고 좋아하던 친구들이 6.25 전쟁으로 목숨을 많이 잃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생명이 많이 연장됐다고 해도 그들에 비하면 난 오래 산 거지요. 이 나이에 생명이 아깝다고 욕심을 부리는 건 부당하지 않겠습니까?" -가족들도 충격이 컸을 텐데요. "사실 가족들에게 가장 죄책감이 컸죠. 아내에게 말할 때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내도 17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완쾌됐지만 암을 경험한 사람에게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려주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또 수술 후 만약 깨어나지 못하면 뒷처리를 해야 할텐데 준비없이 떠나는 것 같아서 미안했죠. 다행히 깨어났고 이렇게 활동할 수 있게 돼 기쁘고 감사하죠." -안구를 적출하는 수술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건 한쪽 눈이 없어도 지금처럼 생각하고 책을 읽고 말할 수 있는 가 였습니다. 의사한테 찾아가 물었죠. 근데 대답이 일상 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결심이 쉬웠습니다. 아마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면 엄청 좌절했을 겁니다. 수술 후 처음에는 걸을 때 중심잡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운전도 이번 주부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운행을 위해 앞차와의 거리나 속도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민 변호사는 수술 전 한 달동안 한쪽 눈을 감고 운전하는 법을 연습했다고 했다.)" -수술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처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온 몸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순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우울했던 생각이 모두 걷혔습니다. 사실 사람사는 건 도전입니다. 그걸 어떻게 극복하는 지가 중요하죠. 지금은 한 눈을 갖고도 이렇게 일상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변호사직에서 은퇴는 안하실건가요. "저는 은퇴할 계획이 없는데요. 정신이 맑을 때까지는 일하고 싶습니다. 형사법 변호사의 고객은 저소득층이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이들이 도움을 찾습니다. 생명이 있을 때 최대한 제 능력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어요? 또 아직 법정에서는 저를 70대로 보는 이들이 없거든요. 하하하."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 지는 모르지만 김영옥 대령을 한인 2세들과 미국 사회에 알리는 데 일할 겁니다. 또 지금 맡고 있는 세계한인교육자총연합회(IKEN) 일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장연화 기자

201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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